3.1독립선언광장
독립선언문이 선포된 태화관터가
‘3·1독립선언광장’
으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1919년 3·1 독립선언서를 선포하였던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터에 2019년 ‘3·1독립선언광장’을 조성하여 여러분과 함께 민족 독립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조성개요

조성위치
종로구 인사동 194-3 일대
조성내용
지장물 정비, 광장조성, 기념물 설치 등
조성방법
민관협력 추진
- 태화빌딩 및 공영 주차장을 활용한 광장조성 협조 : 태화복지재단, 종로구
- 전국, 해외에서 기증받은 돌을 활용하여 광장 조성
추진주체
- 민간 :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태화복지재단, 광복회
- 공공 : 서울특별시(도시재생본부),  ,  종로구

조성 이미지

  • 3·1독립선언광장 조감도(낮)
  • 3·1독립선언광장 조감도(밤)
설 계 자
조정구 건축가(구가도시건축사사무소 대표)
설계의도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거대한 바다가 되듯이 전국 세계 각지의 돌을 모아 만든 광장은 민족의 독립의지가 모여이룬 ‘돌의 바다’가 된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중요한 순간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왔던 우리 민족의 의지가 발현되는 배경으로 구)태화관터에서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형상으로 디자인 하였다. 그러한 돌의 바다위에서 지난 역사의 일부가 잔해처럼 떠있게 된다. 독립선언서를 선포하였던 태화관의 별유천지는 언덕으로 식민지 역사의 상처는 조선총독부 건물의 돌 기둥으로 남아 과거를 표상하며, 돌기둥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자 하는 시민의 의지가 투영되어 상부를 새로이 깎아 낼 것이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조그만 우물이 연결되어 있다. 물은 생명의 원천으로 늘 살아있는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의미하며 우물 속에는 함성의 역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투각되어 있어 물에 반사되는 오늘의 우리 모습이 겹쳐져 보이도록 하였다. 광장은 낮 동안 일상의 삶을 보듬는 편안한 쉼터이자 도시의 여백으로 존재하고, 밤이 되면 기념의 장소로써 민족의 에너지가 발산되는 이벤트의 공간이 될 것이다. 바닥 곳곳에 심어둔 LED 조명을 통해 점점이 점멸하던 광장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한순간 불이 꺼졌다 가운데 기둥과 우물 주위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언덕과 나무, 조형물에 하나씩 불이 켜지고 최고조에 이른 순간, 동심원을 그리며 물이 퍼지듯 바닥의 조명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민족의 의지가 만방으로 뻗어 나가는 모습으로 형상화하고자 한다.

현장 위치도

  • 3.1독립선언광장 위치도
  • 3.1독립선언광장 항공사진

그동안의 경과

2017년
  • 5월~6월 태화관길 일대 활성화 ‘기본 구상안’ 검토
  • 8월 ~ 기념광장 조성 전문가 자문(역사학자, 건축가, 조경 및 공간 디자이너 등)
    - 2017년 2월부터 태화관길 지역의 의견 수렴
  • 11월 ~ 태화관길 역사적 명소화를 위한 붐업 프로그램(3회) 운영
    - 역사강연 & 독립탐방, 역사문화전시관 시범운영, 거리공연 등
2018년
  • 2월 3.1운동 기념사업 공동협력 협약 체결(4개 기관)
    - 서울시, 종로구, 태화복지재단, 광복회
        기념광장 조성에 주차장부지 사용 및 역사문화 프로그램 운영 협조
  • 4월 ~ 기념광장 설계자 지명공고 선정(조정구 건축가) 설계 추진
  • 6월 기념광장 명칭 全국민 공모 선정 : ‘3·1독립선언광장’
  • 11월 21일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공동협력 협약체결

태화관의 역사적 변천사

    • 조선전기 태화정(太華亭) 조선전기 중종반정 공신 구수영이 살았고, 당시 태화관 남측에는 태화정(太華亭)이라는 정자가 있었음
    • 조선후기 순화궁(順和宮) - 조선 후기에는 안동김씨 김흥근(金興根)의 소유를 거쳐 다시 헌종(憲宗)의 후궁인 경빈(慶嬪) 김씨의 사저인 순화궁(順和宮)이 됨
    • 일제강점기 명월관(明月館) 분점 태화관(泰和館) - 일제강점기 이완용이 화재로 집을 잃고 일제로부터 순화궁을 받음.
      여기서 1905년 을사늑약 밀의, 1910년 강제병탄 조약 준비 등이 이루어짐.
      - 1918년 명월관이 화재로 없어지자 명월관의 주인 안순환이 이완용으로 부터 순화궁을 인수해 명월관의 별관으로 사용
      ※ 처음에는 태화관(太華館)이라 하였다가 뒷날 태화관(泰和館)으로 고침
    • 20년대

      ‘태화’를 찾은 어머니

    • 1921년 명월관(明月館) 분점 태화관(泰和館) - 감리교선교부가 매입하여
      ‘태화여자관(泰和女子館)’ 개관
      -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으로 미국 감리교회 여성들의 헌금과 후원으로 사업을 시작하였고 초대관장은 마의수(Mamie D. Myers) 여사
      - 발족당시 여성들의 문제가 시급하다고 판단되어 여성들의 사회교육, 지도력개발, 모자보건 등의 프로그램에도 역점을 둠.
    • 1926년

      뒤쪽 건물이 독립선언을 한 태화관
      협성여자성경학원교감 이효덕

    • 30년대

      ‘태화여자관’ 마당

    • 1933년

      태화관(정문)

    • 1939년 순화궁을 헐고 동서양 혼합양식의 3층 석조건물 완성 - 건축가 강윤에 의해 설계되어 3층 석조 건물로 신축

    • 1981년이후 도시재개발사업에 의거 태화빌딩 및 하나로빌딩 분리 신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