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의 의미
독립선언서와 거국적 독립운동을 준비하다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가 강제로 합병된 뒤, 국내외에서는 다양한 민족 운동이 전개되었다.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올렸던 갑오동학농민혁명(1894), 국권 수호와 민권 신장을 선도했던 독립협회(1896) 활동 등이 있었으며 유생 중심의 의병 투쟁이 있었다.

그러던 중 ‘피지배민족에게 자유롭고 공평하고 동등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하는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원칙이 발표되었다.(1918) 이 발표를 접한 민족 지도자들은 독립운동을 전개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여 국내외 여러 곳에서 독립운동과 독립선언을 표면화했다.

1918년 말부터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천도교 측 인사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독립선언서와 독립청원서, 국권반환 요구서 등을 준비하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거국적인 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각 종교 단체와 협의를 진행하며 저명 인사들을 민족 대표로내세우고자 하였다. 여러 번의 노력 끝에 기독교 측의 이승훈, 불교 측의 한용운에게 승낙을 얻어 기독교와 불교 측도 함께하게 되었다.

  • 서울시청 앞에서 만세를 부르는 군중들
  • 종로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군중들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낭독하다

1919년 2월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으며, 선언서 뒷부분에 첨가된 공약 삼장은 한용운이 따로 작성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독립선언서를 작성할 때는 손병희가 세운 독립운동의 대원칙을 따랐다. 첫째 평화적이고 온전하며 감정에 흐르지 않을 것, 둘째 동양 평화를 위해 조선의 독립이 필요하며, 셋째 민족자결과 자주독립의 전통 정신을 바탕으로 정의와 인도에 입각한 운동을 강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작성된 독립선언서에 2월 27일까지 천도교측 15인, 기독교측 16인, 불교측 2인 등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하였다.
독립선언서 원고는 천도교에서 경영하는 보성인쇄소 사장 이종일에게 전해져 우선 2만 1천 장을 인쇄했다. 인쇄된 선언서는 경운동에 있는 천도교당으로 옮겨져 보관되었다가 28일 전국 각지로 전달되었으며,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배포되었다.

민족대표들은 3월 1일 태화관에 모여, 오후 2시 정각 한용운이 일어나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다음 일동이 대한 독립 만세를 삼창하고 축배를 들었다. 이날 같은 시각인 오후 2시 탑골(파고다)공원에서는 여러 학교 학생들과 시민 약 5천여 명이 모여 있었는데, 학생 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거국적인 3·1운동이 시작되었다.

독립선언서에는 독립 의지와 3·1정신이 담겨 있다

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독립선언서는 육당 최남선이 작성했는데, 조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주독립을 전개할 것을 제시하고 있어 국내외의 어느 독립선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명문으로 평가받는다.

사실 독립선언서는 민족대표와 최남선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선언서라 할 수 없다.

독립선언서에는 그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우리 민족의 여러 구국 운동과 민족정신이 종합적으로 융합되어 최남선의 붓끝에서 구체화되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기미 독립 선언서

이제 독립선언서에 담겨 있는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와 3·1정신을 살펴보자.

첫째, 독립선언서에는 자주독립 정신이 담겨 있다.
독립선언서의 첫 대목은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 조선(我 鮮朝)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라고 선포하였다.
이 내용에서 보듯 3·1운동이 추구한 주된 이념과 정신은 ‘자주와 독립’이다. 이는 대내외적으로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 한민족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회복하는 것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독립선언서에는 자유 민주 정신이 담겨 있다
일제의 식민 통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주독립권을 회복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독립선언서에서는 조선 백성의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자유발전(自由發展)을 위(爲)함’이며 ‘오직 자유적 정신(自由的 精神)을 발휘(發揮)할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자주독립국을 세우려는 근본 목적은 ‘조선인이 본래부터 지켜 온 자유권을 지켜 왕성한 삶의 즐거움을 누리려한다 (아(我)의 고유(固有)한 자유권(自由權)을 호전(護全)하야 생왕(生旺)의 락(樂)을 포향(飽享)할 것)’는, 다시 말해 ‘自主民(자주민)’ 곧 자유롭고 민주적인 이념을 제일의 정신으로 삼았던 것이다. 결국 자주독립된 나라를 세우려 한 근본 목적과 취지는 자주독립된 나라의 구성원 모두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서 는 백성이 나라의 주인인 민주사회, 곧 主權在民(주권재민)의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셋째, 독립선언서에는 인류 공영의 평화 정신이 담겨 있다
독립선언서에 ‘조선의 독립은 조선만이 아니라 일본이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중국 또한 몽매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 동양평화(東洋平和)로 중요(重要)한 일부(一部)를 삼는 세계평화(世界平和), 인류행복(人類幸福)에 필요(必要)한 계단(階段)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풀어 말하면 일본이 침략의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향후 한·중·일 3국이 동양 평화를 이룰 때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 곧 인류 공영의 평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독립선언서에는 우리 민족이 나아갈 꿈과 비전이 담겨 있다
‘아아 신천지(新天地)가 안전(眼前)에 전개(展開)되도다. 위력(威力)의 시대(時代)가 거(去)하고 도의(道義)의 시대(時代)가 래(來)하도다… 바야흐로 신문명(新文明)의 서광(曙光)을 인류(人類)의 역사(歷史)에 투사(投射)하기시(始)하도다’에 잘 나타나 있듯 독립선언서에 담긴 또 하나의 3·1정신은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갈 희망과 꿈, 비전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음침한 옛집(고소_古巢)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흔쾌(欣快)한 부활(復活)의 빛을 향해 힘차게 나가자’는 희망찬 꿈과 비전의 제시는 새 시대를 향해 한민족 구성원 전체를 하나로 묶어 내고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다섯째, 독립선언서에는 혁명 정신이 담겨 있다
3·1운동의 결실로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태동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헌장에‘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하여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정체를 ‘민주공화제(民主共和制)’라고 하였다. 이는 과거 황제가 통치하던 ‘제국(帝國)’에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인 ‘민국(民國)’ 곧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나라를 세운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한마디로 ‘혁명적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같은 혁명적 변화의 단초(端初)를 제공한 것이 바로 ‘3·1운동’이었다는 점에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수운회관 앞의 독립선언문 배부터 표지석
  •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탑골공원 팔각정

이 글은 전 한성대 총장 윤경로 공동대표의 ‘독립선언서에 담긴 3·1정신은?’을 정리해 실었습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_한국학중앙연구원 / 두산백과
한국 근현대사사전_가람기획 / 문화컨텐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