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33인 소개

3.1 운동을 준비하고 이끌었던 민족대표 33인을 소개합니다.

  • 손병희 (孫秉熙) 1861-1922 천도교

    천도교의 지도자이며 천도교 제3대 교주를 지냈다.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경찰에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이듬해 10월 병보석으로 출감한 후 사망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길선주 (吉善宙) 1869-1935 기독교

    장로교 목사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신앙활동으로 민족자립운동을 강조하였고, 숭실학교·숭덕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3·1운동 때 기독교를 대표해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2년간 복역하였다. 2009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이필주 (李弼柱) 1869-1942 기독교

    상동 공옥소학교 교사로 애국 정신과 광복의 큰 뜻을 청소년에게 가르쳤다. 이후 목사가 되어 기독교측 민족대표로 가담하였으며, 2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종교 활동과 육영사업에 힘썼으며 말년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일제에 항거하다가 병사했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 백용성 (白龍城) 1864-1940 불교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운동 때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1년 6개월간 복역하였다.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각교를 창설하였으며 중국 연길에 대각교당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김완규 (金完圭) 1876-1949 천도교

    독립운동가로, 3·1운동 때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여 2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천도교 도사가 되어 종교 활동과 민족 운동을 계속하였고, 광복 후에는 국민회 재정부장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나용환 (羅龍煥) 1864-1936 천도교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천도교를 대표하여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2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에는 천도교 도사로 활동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나인협 (羅仁協) 1872-1951 천도교

    평안도 지역에서 동학농민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동학군을 이끌었다. 3·1운동 때는 천도교를 대표하여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천도교 도사로 활동하다가 한국 전쟁 때 병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양전백 (梁甸伯) 1869-1933 기독교

    신성중학교와 보성여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나라 곳곳에 양로원·고아원도 세웠다. 105인 사건으로 2년간 복역하였으며, 3·1운동 당시 체포되어 다시 2년간 복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양한묵 (梁漢黙) 1862-1919 천도교

    일본에서 손병희와 만나 동학에 입교하여, 천도교의 교리서를 편찬하고 교리강습소에서 학생들에게 근대적인 지식과 더불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3·1운동으로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어 고문을 받다가 옥사하였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유일한 옥중 순국이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이종훈 (李鍾勳) 1856-1931 천도교

    민족대표 33인 중 최고령자이며, 3·1운동으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22년 7월 천도교내 독립운동 조직인 고려혁명위원회의 고문에 추대되어 항일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옮겨가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이종일 (李鍾一) 1858-1925 천도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로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직접 인쇄하고, 이어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2년 반 만에 가출옥하였다. 출옥후에는 조선국문연구회 회장에 취임하여 한글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였으며, 제2의 3·1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다가 발각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임예환 (林禮煥) 1865-1949 천도교

    동학농민운동 때 평안도 지방에서 동학군을 이끌고 싸웠으며, 천도교 도사가 되어 평양에서 민중 계몽과 포교에 힘썼다. 3·1운동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2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 하다가 병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박준승 (朴準承) 1865-1927 천도교

    장성·남원·임실 등지로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며 지역 궐기에 큰 공을 세웠다. 2년간 복역했으며 출감 이후에도 천도교의 교역자로 활동하면서 재차 독립운동의 기회를 모색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오세창 (吳世昌) 1865-1927 천도교

    ‘한성순보’ 기자로 활동했으며, ‘만세보’, ‘대한민보’ 사장을 역임하며 계몽 운동에 앞장섰다. 3·1운동으로 3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서예가로 활동하면서 천도교를 통해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오화영 (吳華英) 1880-1950 기독교

    3·1운동 계획 단계부터 활동하였다. 특히 개성 지역 독립선언서 배포를 담당하였으며, 이로 인해 2년 6개월간 복역하였다. 신간회 간부 등을 역임하였으며, 광주학생운동에 연루되어 다시 체포되었다. 광복 후 정치 활동을 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정춘수 (鄭春洙) 1875-1951 기독교

    원산 남촌동 교회 목사로 재직하던 중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이로 인하여 1년 6개월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신간회와 흥업구락부에 참여하였으나 흥업구락부 사건을 계기로 변절하여 내선일체와 신사참배를 독려하는 친일 행적을 남겼다.
  • 최성모 (崔聖模) 1874-1937 기독교

    해주 남본정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옥한 뒤에 만주로 망명하여 펑톈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김병조 (金秉祚) 1877-1948 기독교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선천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이후 임시정부에서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만주에서 ‘신일학교’를 설립하고, ‘한족신문’을 발행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광복 후에는 반공 운동에 앞장섰다. 199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김창준 (金昌俊) 1889-1959 기독교

    3·1운동 때 기독교측 대표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는데, 당시 30세로 33인 중 가장 어린 나이였다.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가출옥하여 설교 및 강연활동을 계속하였다. 광복 후 공산주의 사상에 몰입하여 좌익활동을 하였고 한국 전쟁 후 월북하였다.
  • 권동진 (權東鎭) 1861-1947 천도교

    독립운동가이며 정치가로, 구한말 혁신운동에 참여했다가 임오군란 때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3·1운동 때 천도교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3·1운동의 핵심적 지도인물로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에도 신간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광주학생운동 때 다시 1년간 복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권병덕 (權秉悳) 1867-1944 천도교

    손병희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천도교에서 활동하다가 3·1운동에 참여해 2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에는 천도교 종리원의 서무과 주임을 거쳐, 중앙교회 심계원장·감사원장·선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유여대 (劉如大) 1878-1937 기독교

    평안북도 의주에서 3·1운동을 조직하여 3월 1일 독립선언식과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의주에 양실학교를 세웠고 2년간 복역한 후 출옥하여 폐교에 이른 양실학교를 재건하였으며, 민족계몽을 위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이갑성 (李甲成) 1886-1981 기독교

    청년층을 대표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3·1운동 당시 각 학교의 시위운동을 주도하고 전단 살포의 중책을 맡아 활동하다가 복역하였다. 이후 신간회 사건으로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광복 후 정치적 활동과 함께 광복회 등을 통해 독립유공자들의 복지를 위해 힘썼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 이명룡 (李明龍) 1873-1956 기독교

    3·1운동 때 기독교측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여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2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에는 계속 종교·산업·교육에 종사하며 민족 지도자로서 활약하였다. 1945년 광복 후 조선민주당 고문에 취임하고, 사재를 처분하여 평동중학교를 설립, 정계와 교육계에서 활약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이승훈 (李昇薰) 1864-1930 기독교

    교육자이며 독립운동가로 신민회 발기에 참여했고, 오산학교를 세웠다. 3·1운동 당시 기독교측 대표로 3·1운동 준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출옥 후 동아일보사 사장에 취임했으며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을 추진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박희도 (朴熙道) 1889-1952 기독교

    교육자, 언론인이며 기독교 민족운동가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해 체포되었고, 출옥 후 독립사상 전파와 신앙 운동에 힘쓰다가 다시 복역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에는 변절하여 징병제와 내선일체 정책을 홍보하는 등 친일행위를 했다.
  • 박동완 (朴東完) 1885-1941 기독교

    기미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여 2년간 복역하였고, 출옥 후 조선 중앙기독교청년회 소년부 위원장, 신간회 상임간사 등을 지내며 사회운동에 힘썼다. 만보산 사건 이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신홍식 (申洪植) 1872-1939 기독교

    평양 남산현 교회에서 목사로 활동하던 중 3·1운동 계획에 대해 듣고,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독립선언서에 기독교 대표로 서명하였으며 2년간 복역했다. 그 뒤에는 사회적 활동을 통해 민족실력양성운동을 벌이고, 흥업구락부 활동을 통해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신석구 (申錫九) 1875-1950 기독교

    목사로서 전도사업에 종사하는 한편 민족사상 고취에 전력하다가,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며 만세 운동의 주도 인물이 되었다. 2년간 복역한 후 감리교단 차원의 신사참배 결의에 반대했고 신사참배와 전승기원예배를 거부하여 여러 번 투옥되었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최린 (崔麟) 1878-1958 천도교

    비밀결사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항일구국운동에 투신하여, 1918년 천도교 간부들과 독립운동방안을 논의,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33년 말 대동방주의를 내세우며 친일파로 변절하여 징병제를 독려하고 학병지원을 촉구하는 등 해방 때까지 친일 활동을 하였다.
  • 한용운 (韓龍雲) 1879-1944 불교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의 대표로 독립선언을 이끌었다. 일제강점기동안 한국 불교계의 분열을 막고자 힘쓴 승려이자 저항적 민족시인, 독립운동가이다. 3·1운동으로 3년간 복역했으며, 이후 신간회에 가입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또한 시집 <님의 침묵> 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에 헌신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홍병기 (洪秉箕) 1869-1949 천도교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이로 인해 2년 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천도교 독립운동 조직 고려혁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1926년 지린성에서 고려혁명당 창당에 참여, 고문으로 추대되었다가 다시 검거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2년간 복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홍기조 (洪基兆) 1865-1938 천도교

    홍경래의 후손으로 동학 활동을 하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였고, 3·1운동 때 2년 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고향에 돌아가 천도교의 도사, 장로를 지내면서 청소년의 민족정신 고취를 위한 활동에 힘썼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