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응답하라, 1894년의 함성 이여 – 동학농민혁명과 2019 불매운동

최제우의 명예회복,그리고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반발해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2016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대한민국 상황은 당시의 상황과 데칼코마 니처럼 겹쳐져 있다.
글 편집부

 

사람이 곧 하늘이다 – 1894년 동학농민혁명

최제우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교조신원운동이 삼례와 보은집회로 조직화되는 사이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은 능민의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농민들을 동원해 저수지 ‘만석보’를 보수하게 하고 이를 이용하는 농민에게 과도한 세금을 걷 는 조병갑의 만행은 백성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조병갑이 파면되고 수탈된 쌀을 되찾는 등 사태는 수습되는 것 같았지만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안핵사 이용태가 동학교도를 탄압하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이에 전봉준을 중심으로 집결한 동학농민군은 황룡촌과 황토현의 전투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기어이 전주성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그제서야 화들짝 놀란 조정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청나라 군대뿐 아니라 일본군까지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는
결과를 낳게 되고,그제야 동학농민군과 대화를 시작한다.

결국 조정은 동학농민군과 만나 농민군의 요구를 수용하는데,이것이 ‘전주화약’이다. 동학농민군이 제시한 폐정개혁안 을 받아들였고 농민들의 자치기구인 집강소,개혁 추진을 위한 교정청도 설치한다.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안에는 신분 제의 폐지,과부의 재가 허용,토지제도 개혁 등 봉건적 요소 를 혁파해 동학 정신을 실현하는 의지가 담겼다.

전주화약으로 일단 해산한 동학농민군이었지만,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한반도에 들어온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문제였다. 특히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하는데,이는 다시 한 번 동학농민군을 집결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동학농민군이 들었던 ‘반봉건’의 기치는 외부의적으로 인해 ‘반외세’로 전환되었다. 손병희가 이끄는 충청도의 동학농민 ‘북접’과 전봉준이 이끄는 전라도의 동학농민 ‘남접’이 합세해 세를 키운 동학농민군은 수도로 진격해 일본군을 몰아내려 했다. 그러나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 군에게 패배하고,그 해 12월 녹두장군 전봉준이 체포되면서 1년간의 치열했던 투쟁은 끝이 나게 된다.

동학농민혁명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그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갑오개혁으로 봉건적 요소를 혁파하고 의병전쟁을 통한 외세 척결과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게 나라냐? – 2016년 촛불혁명

2016년 가을 대한민국은 ‘폭풍전야와 같았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의 비선실세가 부정적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에도 관여했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개헌카드를 꺼내며 정국 전환을 시도했고,청와대 비서실장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논란을 일축하며 사태는 진정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발견되며 ‘이게 나라냐’ 는 국민의 분노가 촛불로 타오르기 시 작했다.

대통령은 수차례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어중간한 태도로 일관하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고 광화문을 채운 촛불의 물결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국민은 대통령의 퇴진을 원했지만 대통령 탄핵의 후폭풍을 학습한 바있었던 정치권은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더욱 커다란 촛불의 물결로 기어이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고,평화로운 혁명을 통해 반년 만에 새로운 정 부를 출범시켰다.

2016년 촛불혁명은 동학농민혁명부터 전주화약에 이르기까지 흡사한 결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권력층의 비상 식적인 타락과 민(民)의 분노,이에 대처하는 권력의 안이한 태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그리고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으로 동학농민혁명 ‘반외세’의 불길이 다시 타올랐던 것처럼 작금의 경제보복은 일본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당겼다. 시민들은 자발적 불매운동을 통해 일본 의 오만한 태도를 행동으로 직접 비판하고 나섰다. 1894년 동학농민군은 우금치에서 패했고 동학농민혁명은 미완의 혁명이 되었다. 하지만 2019년 대한민국에서 혁명은 완성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력은 구한말 조선이 아니고,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권력마저 주저앉힌 경험을 여러 번 거치며 단련된 시민들이다. 그 리고 1894년이든 2019년이든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를 깨뜨리고 미래를 준비할 주체는 바로 ‘민(民)’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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