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다 – 3·1 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좌담회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애국선열의 업적을 기리면서 3·1정신을 기억하고,계승하기 위해 지난 5년간 다양한 기념사업을 기획 및 추진해 왔다. 지난 9월 10일 한 자리에 모인 추진위 공동대표들은 그간 추진위가 진행한 사업을 되돌아보고,기념사업이 올해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
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 편집부 ㅣ 사진 봉재석

 

  • 박남수 상임대표
  • “올해 가장 큰 사업은 공동자료집 발간”
    박남수 상임대표가 본격적으로 기념사업을 준비한 것은 2014년 6월. 5년 전 7대 종단 수장들과 정부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반대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2015년에 종합계획서를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받고,2016년에는 민족대표보고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박남수 상임대표는 “추진위가 지금까지 함께 진행했던 사업은 기념물과 조형물,역사공원,조사연구사업,학술사업,세계네트워크사업 등이 있으며 상생평화선언과 공동자료집,뮤지컬 등이 있다”고 설명하며 올해 가장 큰 사업으로는 공동자료집을 꼽았다. 그는 이어 “다만 우리가 했던 일이 바탕이 돼서 누가 다른 일을 한다고 하면 3·1정신은 계속 계승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박경조 성공회 대주교
  • “배우고 깨달음을 얻었던 시간들”
    박경조 성공회 대주교는 추진위 공동대표로 활동했던 시간이 깨달음을 얻은 귀중한 시간이 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중국 지역에 답사에 참여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못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그 폐해를 몸으로 느꼈다”며 “근대사를 관통해오면서 남북전쟁 이후로 우리가 반공을 국시로 삼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좌파로 몰고 민족적인 과제조차도 그 이념에 사로잡
    혔는지 스스로 깨달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경조 대주교는 추진위를 준비하면서 종교계 인사들을 결집했던 박남수 상임대표에게 감사의 뜻을 밝히며 “손병희 선생께서 큰 통찰을 가지고 3·1운동을 시작했던 것처럼 박남수 대표께서 혜안을 가지고 앞장서주셨다. 같이 공부하고 경험하고 연계하면서 3·1 정신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고 설명했다. 박경조 대주교는 3·1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 종
    교인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현장에 가서 수많은 죽음을 기념하며 묵념하고 그때의 세월을 떠올리는데,가슴이 뜨거워지고 숙연해졌다”며 “이 운동을 계속 해나가야 하고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해 후손들에게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미완의 3·1운동”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는 민(民)이 주도하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00년 전 당시 정부는 일본이었고 그때는 관이 없었고 민주라는 말이 없었다”며 “관 주도의 100인위원회가 나쁜 건 아니지만 3·1운동을 그렇게 기념하면 안 된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이어 보수 진영에서 8월 15일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을 건국의 시작이라고 보고,다른 쪽에서는 상해 임시정부가 그 시작이라고 보는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그는 “다양성이라고 보면 좋았을 텐데 과거의 출발을 놓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며 “역사의 정통성에 있어서 한 줄기의 두 사건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것은 패권 싸움이고 식민주의 시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이 대립을 극복하지 않으면 미완의 3·1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차원이 아니라 국민으로서의 3·1 운동을 지속해야하고 이루지 못한 것과 내부의 갈등을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한다”고 제안했다.
  • 박인주 국민대 석좌교수
  • “사회 문제 해결의 기본 정신을 3·1운동으로”
    박인주 국민대학교 석좌교수는 한국사회의 패러다임 이 바뀔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이제는 양적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탑다운 방식에서 바텀업 방식으로,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성과주의·결과주의보다는 과정주의나 절차주의로 전환돼야하는 시기라고 봤다. 그는 “이 네 가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필요성을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했던 일과 앞으로의 과제를 고민해보면 민간이 할 수 있는 일로서는 작지만 알차게 우리가 할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한민국 사회는 아직 탑다운 방식의 문화가 지배적” 이라며 패러다임을 바꾸어서 관은 관이 해야 할 일을,민은 민이 해야 할 일을,관과 민이 협력해야 하는 일에서는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이번 3·1운동 기념사업에서도 관주도적 행태가 적용이 돼서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부
    의 불평등,소외계층,이념적 견해 차이,노사 간의 문제 등 갈등 구조가 얽히고설켜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 정신은 3·1 정신에서 출발하면 좋겠다”며 “3·1 운동의 철학과 3·1 정신이 이 시대에 확산되기 위한 지속적인 논의와 토론,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윤경로 한성대 전총장
  • “100주년에 터진 한일관계 문제, 상징성 있어”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위원장을 맡은 윤경로 한성대학교 전 총장은 3·1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종파나 계파를 초월해 민족으로 하나가 되는 ‘연대정신’을 꼽았다. 그는 연대정신 측면에서 볼 때 올해 진행된 사업 중 공동자료집이 상당히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봤다. 윤경로 전 총장은 “100년 전 3·1운동과 관련되었던 국내외 신문언론자료를 다 모았고 50인들에 대한 연구,유적지도 답사를 해서 자료화했다”고 부연했다. 다만 그는 “연대,연합 정신에 대한 얘기가 많이 오고갔지만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이번 3·1 운동 100주년기념식과 관련해 남북정상간의 합의도 있었고,판문점에서 하자는 얘기까지 됐는데 그 결실을 보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윤 전 총장은 100주년을 맞는 해에 한일관계에서 큰 문제가 터진 것도 상징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100년 전과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올해 한일관계가 꼬인 것은 오히려 우리 역사 발전에 터닝포인트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3·1운동 기념사업이 100주년을 넘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00주년을 빼고 3·1운동기념사업회 등으로 정식 등록을 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을 조금 더 확대하고 정비해서 3·1 정신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단체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이일영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부회장
  • “독립선언문의 선언대로 살아야 하는 때가 바로 지금”
    중국과 연해주,미국 등 추진위에서 진행한 대부분의 답사에 활발하게 참석했던 이일영 교수도 3·1 운동 기념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답사를 하면서 엄청난 이야기 거리가 생겼다”며 “이는 단순한 얘깃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늘날 우리는 자주민주와 자주국을 이야기한 독립선언문과는 달리 미국에 거의 식민지처럼 끌려 다니고 있다”며 “3·1운동 때에 비하면 엄청난 힘과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정권들이 계속 엎드리고 자기의 주장을 펴지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독립선언문에 나와 있는 선언대로 살아가야 하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며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확산되고 시민들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들의 참여운동이 일어나면 더욱더 폭발적인 에너지가 생길 것 같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과제 중에 가장 큰 것은
    남북문제”라며 반공 이데올로기를 깨고 남북 화합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 도법스님
  •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다시 함께 뭉치자”
    전국을 돌며 ‘한반도 평화 만들기 은빛 순례’를 진행하고 있는 도법스님은 우리나라 내부에서 극단적인 적개심을 만들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풀지 않고서는 남북문제를 풀어나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대의를 위해 국민들이 다시 뭉쳐야 한다고 봤다. 도법스님은 “3·1 운동은 ‘방방곡곡 남녀노소’로 요약된다”며 “입장도 다르고 모든 게 다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함께했
    듯이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서 우리 지역에서도 함께 하자는 것이 미약하지만 우리들의 은빛 활동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수·순천사건과 관련한 최근의 경험담을 제시하며 평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도법스님은 “여수·순천문제를 다루는 예술가들이 예술제를 준비했는데 여수에서는 여순항쟁이라는 이름으로,순천에서는 ‘사건’이라는 이름으로하길 원했다”며 “끝내 ‘여순평화’라는 주제로 이어가자는 얘기가 나와서 전격적으로 합의가 됐다”고 부연했다. 이어 그는 “우리 안의 문제를 풀어서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독립운동 정신을 현실로 가져오는 것”이라며 “이것이 이뤄진다면 독립운동 정신으로 대한민국 문제와 한반도 문제를 바르게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박남수 상임대표
  • “100주년 기념은 올해부터 시작되는 것”
    박남수 상임대표도 ‘함께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상임대표는 “100주년을 맞으면서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주로 하는 ‘삼천리 방방곡곡 남녀노소’라는 말이 우리 민족이 사는 방방곡곡,그것이 미국이든 러시아든 어디든 독립운동이라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며 “스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른 것이 서로 합해져야 아름답다는 얘기고 힘이 생긴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획일적인 것이 모
    여 획일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오히려 분열을 만든다”며 “2017년 제정된 김복동 평화상처럼 우리도 다음에 때가 되면 3·1 운동평화상을 제정해서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기회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 박인주 국민대 석좌교수
  • “각자의 능력에서 펼치는 새로운 자강운동 필요”
    좌담회에서는 자강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갔다. 박인주 교수는 “도법스님이 말씀하신 비폭력 평화행동은 자강이라는 용어로 대표된다”며 “제국주의에 항거하기 위한 저항적 민족주의 논리로서의 자강을 오늘날 현실에 맞춰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120년 전에는 제국주의에 항거하기 위한,저항적민족주의 논리로서의 자강이었지만 120년 전이든 지금이든 국제정세의 현실에서는 자강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자강은 정신적·철학적·이념적·경제적인 부문에서 이뤄질 수 있다.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함에 따라 자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셈이다. 그는 “자강을 위해서 내부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적 운동이 필요하다”며 “은빛 순례처럼 60대 이상 실버는 실버대로,청년은 청년대로,사업가는 사업가 대로,시민운동하는 사람들은 시민운동하는 대로,각자의 능력에서 자강운동이 새롭게 설계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 “일본 불매 운동을 통해 본 후세대의 힘”
    박종화 목사는 올해 불거진 일본과의 갈등을 통해 자강의 가능성을 봤다. 그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서는 젊은 세대의 힘에 깜짝 놀랐다”며 “정치적 야욕 없는 젊은 세대의 순수한 애국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1920년대 일제의 경제적 수탈에 항거했던 민족경제 자립운동인 물산장려운동보다 이번의 일본 불매 운동에 더 높은 가치를 두며 이번 불매 운동이 “불매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평화의 힘을 기르려는 동인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후속 세대에게 자유와 창의성의 중요함을 알리며 3·1운동 정신을 이어가야한다고 봤다. 그는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과 중국의 평화지향적 시민사회와 연대를 넓혀가는 것도 필요하다”며 “일본과 중국의 평화지향적인 단체를 찾아서 힘 있는 평화운동을 펼치는 연대사업을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 박경조 성공회 대주교
  • “이분법적인 사고 넘어설 필요 있어”
    박경조 대주교는 우리 사회 내부에 깊게 자리한 이분법적인 사고와 이로 인한 갈등을 쉽게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조망했다. 일본에는 전범 청산이,한국에서는 친일파의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그는 “이승만부터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으면서 당시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내몰았다”며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반공’이 제대로 된 이념이 아니며 우리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인식이 각인됐다”고 지적했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친일파 자손들의 70%는 서울대학교과 연세대학교,고려대학교 출신들이며 판검사,신문사,재벌 등 기득권이 많다. 박 주교는 “이승만 시대부터 쌓인 서로간의 적개심은 쉽게 깊게 뿌리를 내려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가 놓인 상황은 쉽지 않고 이걸 넘어서자는 게 우리 추진위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서서 가기 위해서는
    평화운동이나 양심적인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 나가야한다”고 덧붙였다.
  •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미완의 3·1운동”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는 민(民)이 주도하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00년 전 당시 정부는 일본이었고 그때는 관이 없었고 민주라는 말이 없었다”며 “관 주도의 100인위원회가 나쁜 건 아니지만 3·1운동을 그렇게 기념하면 안 된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이어 보수 진영에서 8월 15일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을 건국의 시작이라고 보고,다른 쪽에서는 상해 임시정부가 그 시작이라고 보는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그는 “다양성이라고 보면 좋았을 텐데 과거의 출발을 놓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며 “역사의 정통성에 있어서 한 줄기의 두 사건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것은 패권 싸움이고 식민주의 시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이 대립을 극복하지 않으면 미완의 3·1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차원이 아니라 국민으로서의 3·1 운동을 지속해야하고 이루지 못한 것과 내부의 갈등을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한다”고 제안했다.
  • 도법스님
  • “일본과의 관계도 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도법스님은 한일관계에 있어서도 다시 한 번 평화를 강조했다. 그는 “남북을 놓고 봤을 때 현재 상황에서 힘 있는 역할을 하는 쪽은 북이 아니라 남한 쪽”이라며 “남북문제를 치고 나간 것처럼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평화를 내새워 풀어가는 입장을 견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법스님이 바라본 자강의 중요한 축은 민주사회의 양심과 지성으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받아내는 것. 이들의 공감을 받는 방법은 “평화”라고 강조했다. 도법스님은 “한일관계에 있어서 독도는 싸움거리인데 거창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친구들은 ‘한일평화의 징검다리 독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더라”며 “이 자리가 평화로 향하는 움직임에 불을 지피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 박남수 상임대표
  • “새롭게 살아가는 지혜, 3·1운동 속에 있어”
    좌담회에 참석한 공동대표들은 3·1 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궁극적인 성공은 남북이 함께하는 사업이 이뤄졌을 때라는 것에 다함께 입을 모았다. 박남수 상임대표는 특히 “남북의 사안을 공동으로 놓고 가는 것,그것이 추진위가 하려고 했던 것”이라며 “북한 측과 3·1 운동 공동사업을 하려고 했는데 엎어져버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그는 “미래 평화와 세계평화는 독립선언서에 나온 말인데 우리가 실천
    을 못하고 있었다”며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내게 만드는 것도 동북아 평화를 위한 일이 아닐까 생각 한다”. 이어 “우리가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3·1운동 속에 있다”고 강조하며 좌담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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