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정신을만나다| 광저우 지역 독립운동가 담은〈낮 하늘의 별〉출간 앞둔 강정애 박사

“밤마다 독립운동가들과 대화 나눴죠”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원래 외교관이었다. 1936년 외교관에서 물러나 학자의 길을 걷던 그가 1961년 집필한〈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경구를 남긴 불멸의 역사서가 되었다. 그리고 중국 광저우 총영사관에서 외교 업무를 맡아보던 한 사람이 광저우 지역 독립운동가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었던 기록을 담은 결과물이 곧 빛을 보게 된다. 강정애 박사의 책〈낮 하늘의 별〉이다.

운명처럼 만난 두 개의 무덤

한중수교가 이뤄지기 직전 중국학을 공부하던 강정애 박사는 지린성 창춘 조선족 소학교에서 한글학교 교사 제의를 받고 중국으로 향했다. 교사를 하며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꼈던 그녀는 지린대학교와 쑤저우 대학교에서 중국 현대 문학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이년 개관한 광저우 총영사관의 개관 멤버로 일을 시작해 2018년까지 일하면서 광저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료를 틈틈이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모은 책이 바로 2010년 출판된 〈광저우 이야기〉다. 2010년 아시안게임을 즈음해 광저우를 소개하는 책을 내 볼 생각으로 시작된 일이다.

“사실 광저우는 볼만한 곳이 별로 없지만 역사적 스토리는많아요. 때문에 새롭게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이슈가 한동안 많이 나왔어요. 그 내용을 스크랩해뒀다 찾아갔어요. 막상 가보면 볼만한 것이 없는 경우도 많았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사진만 찍고 돌아온 적도 있었지만,그 작업이 10년 쯤 쌓이다보니 광저우의 2000년 역사가 보이더라고요.”

선생이 발로 뛰며 수집한 자료로 탄생한 〈광저우 이야기〉는 광저우의 역사를 소개하는 재미있는 안내서이자 광저우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역사 가이드가 되었다. 그리고 〈광저우 이야기〉의 자료들을 수집하던 중 강정애 박사는 두개의 무덤과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강정애 박사가 〈광저우 이야기〉에 사용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찾은 곳에서 발견한 ‘황포군관학교 학생 묘원’. 박사는60여 개의 묘비 중 한국인의 이름이 담긴 묘비 2개를 발견한다. 1927년에 사망했다고 적힌 묘비의 주인이 80여 년 세월을 타향에 묻혀 풍화되는 동안 대한민국은 이들을 기억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사진을 남기고 돌아와 국가보훈처에 연락해보니 대한민국은 이들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이들이 어떤 사연을 안고 죽었으며 머나먼 땅에 묻히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강정애 박사는 1927년 광저우에서 일어난 사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4년에 쑨원이 광저우에서 국공합작을 발표하고 러시아와 손을 잡아 군사지도자 양성을 위한 황포군관학교를 세운 것과 대한민국 독립운동지사 800여 명이 이 학교로 모여들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오랜 시간 땅에 묻힌 빛바랜 유물을 발굴하듯 하나씩 하나씩
이들의 자료들을 발로 뛰며 수집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이들이 조금씩 빛 속에서 희미한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사라진 독립운동가들도 우리에게 보이지 않을뿐 언제나그곳에 있었다.

독립운동가와 만나던 새벽

국공합작 시기 국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주의,공산주의,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사상적 토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된 지상과제는 오로지 조국의 독립이었다.

“황포군관학교에 와서 활동했던 이준 열사의 장남인 이종승 님은 러시아에서 조선의용군을 조직해 활동했어요. 저는 이준 열사는 알고 있었지만 아드님은 생소했는데,이분은 제정러시아가 무너지고 혁명정부가 세워질 때 적의파(혁명군)에 서서 싸워요. 러시아어도 모르는 조선의용대들이 조국광복을 외치면서 전쟁을 하셨다고 해요. 이분이 공산주의를 수용했다고 하지만 어쨌든 목표는 광복이었던 거죠. 모두 당시 최고 엘리트 지식인들이었고,식민지배를 당하고 있는 조국의 출로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우리는 전혀 몰랐던 거죠.”

황포군관학교에 확산되던 공산주의 이론을 받아들인 젊은이들은 국공합작이 깨지자 설 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분단된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설 자리를 잃었다.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스러져 간 개인의 가슴 절절한 사연도 있었다.

“1927년 광저우 코뛴으로 인민정권이 수립됐을 때 박영이라는 분은 임신한 부인과 동생 둘을 데리고 러시아에서 광저우로 내려와요. 코뛴이 성공하면 공산당이 우리를 도와 광복을 당겨주리라 생각했죠. 하지만 결국엔 국민당에 잡혀 200여명이 밧줄에 묶인 채 한 방에 넣어져 총살을 당해요. 이분은 러시아에서 적의군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다치기도 했죠. 아이를 가진 아내에 동생도 있는데 머나먼 타국에서 총살을 당
했다니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독립운동가 박영의 기록을 좇던 새벽을 강정애 박사는 잊지 못한다. 독립을 위해 가족과 함께 대륙을 떠돌던 박영이 겪은 고초와 비참한 죽음 앞에 가슴 아파하는 강정애 박사 뒤에 그 사람,박영이 찾아와 “예,그게 바로 저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하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날 새벽 강정애 박사는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하고 나지막이 대답했다.

낮의 하늘에도 별은 그곳에 있다

별은 항상 그곳에 있다. 때로는 햇빛에,때로는 달빛에,때로는 구름 속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항상 그곳에 존재해 왔다. 언젠가 밤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오던 강정애 박사는 인천 부근 아름다운 야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며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이 아름다운 빛들은 아침이면 사라지겠지만 보이지 않을 뿐 언제나 이곳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사라진 독립운동가들도 우리에게 보이지 않을 뿐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고. 그리고 〈낮 하늘의 별〉이라는 책의 이름을 생각해냈다.

책에는 강정애 박사가 발품으로 수집한 30여 명에 가까운 독립운동가의 생애가 빼곡하게 담겼다. 그 생애를 진흙 속에서 건져내며 그들과 교감했던 강정 애 박사의 감상도 함께 담았다.

2018년에는 주 광저우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0년 강정애 박사가 수집했던 광저우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을 〈중국 화남 지역의 한국독립운동사〉라는 한권의 책으로 묶어 발행했다. 이 책은 광저우 동포와 시민들에게 광저우 지역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알리는 한편 곧 발행될 책 〈낮 하늘의 별〉의 토대가 되었다.

강정애 박사는 자신의 연구 성과의 빛을 보게 해준 홍성욱주 광저우 대한민국 총영사와 책의 내용을 감수하고 축사까지 써준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강정애 박사는 직접 발로 뛰며 자료를 찾는 행동파다. 수많은 노력이 들어간 이 작업에 돌아올 대가는 그리 크지 않다.

“독립운동가들은 대가를 바라며 독립운동을 했을까요? 이연구는 그 분들이 나에게 맡긴 사명이라고 생각하기에 연구하면서 대가를 바라는 건 그 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 같았어요.”

그리고 강정애 박사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도 당부했다.

“젊은이들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해요. 역사를 안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거죠. 그런데 많은 역사들이 누락되었고,누락된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좋겠어요.”

강정애 박사의 책 〈낮 하늘의 별〉은 2019년 중으로 출판된다. 강정애 박사는 책이 출판되어도 한국에 들어올 계획이 없다고 홀가분히 말했다. 책은 필자의 손을 떠났고,이제 잊혀졌던 광저우 독립운동가들이 독자들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일만 남았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