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업을 알리다| 군산지역 3·1운동 유적답사

지난 10월 18일(금), 19일(토)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및 임원들은 역사 여행 전문가 박광일 선생과 함께 1박 2일 여정으로 군산지역 3·1운동유적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군산은 일찍부터 미곡을 중심으로 한 각종 산물이 모이는 곳으로 조선 후기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군산항이 개항된 이후부터 일제의 수탈과 침략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입니다.

일제는 미곡 수탈을 위해 군산에 신작로(현 번영로)를 만들고 강제 병합 이후에는 부잔교를 설치해 24시간 미곡을 수탈했습니다. 이러한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는 항일운동은 1907년 의병 전쟁과 객주가 중심이 되어 전개된 국채 보상 운동을 시작으로 1919년에 3·1운동으로 계승되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연대 파업과 소작 쟁의 등과 같은 다양한 항일 독립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현재 군산은 우리나라에서 근대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 중 하나이자, 뼈아픈 일제 수탈의 역사 현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답사단은 여정은 연천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시작했습니다. 윤봉길의사 기념관은 윤봉길의사의 독립운동 행적을 각종 영상과 디오라마로 생생히 보여주며 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윤봉길의사의 사당인 충의사에 들러 추모를 한 답사단은 윤봉길 기념관과 생가를 둘러보며 우국지정을 다시금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군산으로 이동한 답사단은 군산 지역의 대표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우리 민족 문화재를 불법 수집하여 보관하였던 시마타니금고와 일제 강점기 때의 토지 수탈의 실상을 보여주며,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이영춘 박사가 이용했다는 의료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이영춘가옥을 둘러보며 일제강점기의 군산지역에서 행해진 수탈과 탄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3·1만세운동이 발발하고 3월 5일 군산에서는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자 전남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구암역사공원에 자리한 3·1운동100주년기념관은 군산 만세운동을 최초로 시작한 군산 영명학교 모습으로 건립을 했다고 합니다. 기념관과 구암역사공원을 둘러본 답사단은 100년 전 수탈의 현장에서 더 뜨겁게 울려 퍼졌던 만세의 함성이 생생히 들려오는 것 같아 묵직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첫날의 일정을 마친 답사단은 ‘3·1운동 100주년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현 시대에 3·1운동의 의미와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열띤 의견을 주고 받으며 첫날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둘쨋날은 일제강점기에 일제 수탈의 중심이었던 군산항과 일제시대의 모습이 재현되어 그 시대의 아픔이 남아 있는 근현대사거리를 방문하였습니다. 호남지역의 쌀을 반출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군산항의 부잔교, 일제 수탈의 중심이었던 군산 세관, 조선은행 군산지점, 그리고 일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일본식 건축물을 둘러 보았습니다.

군산항은 조선시대에 조운의 중심지로 발전했고 호남의 물자가 모이는 집산지였습니다. 청일전쟁 이후 개항됐고 일본이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반출하기 위해 이용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호남과 충청의 농토를 빼앗아 일본 농민들을 살게 하여 전북 지역은 일본인 농장이 가장 많이 모여 있던 지역이었고, 일본 식민정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과거 일제강점기의 아픔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군산 답사는 1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큰 감동과 그 시대의 선조들의 심정에 동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과거 일제강점기의 아픔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군산 답사는 1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큰 감동과 그 시대의 선조들의 심정에 동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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