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업을 알리다| 3·1운동 100주년, 평가와 과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와 집행위원들은 결산세미나를 가지고, 그간 추진위가 진행했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정리 및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미완의 사업에 대해서는 반성하며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지며, 추진위의 활동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된 후에도 3·1운동과 관련된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결산세미나에서 오갔던 의견들을 들어봅니다.

 

박남수 상임대표

3·1운동 100년의 역사는 만들어졌다
박남수 상임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결산 세미나 시작을 알렸습니다. 우선 그는 “100이라는 숫자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100년 만에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추진위 사업을) 시작했다”며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감히 어떻게 사업을 진행했을까 생각도 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아울러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건립과 전국 네트워크 사업 등 미처 완료하지 못했던 사업에 아쉬움을 표현하며 못다 한 일에 대해서는 “단체를 이끌어가는 사람의 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수없이 생각을 해봤고 내가 부족한 점과 이 조직에서 부족했던 일들이 무엇인지 반성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그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3·1운동을 공부했고 그 배움을 어떻게 후배들과 시민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기에 후대에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사업을 할 때 추진위의 활동을 참고자료로 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습니다.

박경조 성공회 대주교

제일 잘한 것은 청년들과 함께한 것
박경조 성공회 대주교는 추진위가 진행한 청년 서포터즈 등 시민들과 청년들과 함께했던 사업을 언급하며 “청년들에게 3·1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와 관련된 활동이 많이 전개된 것이 제일 잘한 활동이었던 것 같다”며 “추진위에서 상당한 관심과 예산을 쏟은 게 고맙고 덕분에 3·1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그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이 관 주도로 진행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느낀 마음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이) 관 주도로는 되지 않는 일인데 관 주도로 했던 것”이라며 “자기들만 통일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오만한 자세도 문제였던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완규 신한대 석좌교수

남북이 함께하는 3·1운동 기념사업, 끊임없이 고민해야
최완규 신한대 석좌교수도 박경조 대주교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최 교수는 지난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의 원로자문에 포함됐으며 지난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북한대학원대학교 4대 총장을 지낸 ‘남북문제 전문가’입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 당시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함께하도록 협의하기로 했었다”는 걸 언급하며 “북한을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함께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으면 사실상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 교수는 앞으로 3·1운동 기념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남북이 앞으로 어떻게 화해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김대선 한국종교연합 공동상임대표

100년 전보다 민간의 뜻 더 잘 모았다
김대선 한국종교연합 공동상임대표는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정부에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주도한다는 점이 자신의 신념에도 잘 맞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100년 전 3·1운동은 나라가 없을 때 백성들이 일어나서 한 것”이라며 “추진위에는 민족대표 33인의 중심이었던 세 개 종단과 더불어 원불교와 성공회, 시민단체도 들어왔기에 어떻게 보면 100년 전보다 민간의 참여를 더 넓혔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김 대표는 추진위가 진행한 사업 중에 3·1운동100주년기념 공동자료집 편찬을 가장 의미가 깊다고 봤습니다. 그는 “(3·1운동은) 100년 동안 연구가 많이 됐지만 분야별, 지역별, 종교별로 흩어져 있었다”며 “공동자료집 편찬 사업을 하면서 흩어져 있던 걸 하나로 묶은 것은 굉장히 보람된 이야기다. 훗날에도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왼쪽 부터 박남수 상임대표, 박경조 성공회 대주교, 최완규 신한대 석좌교수, 김대선 한국종교연합 공동상임대표
윤석산 한양대 명예교수

종교 간 화합과 공존이 우리의 본모습
윤석산 한양대 명예교수는 100년 전 종교인들이 힘을 합쳐 독립운동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민간이고 종교인들의 모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또한 여러 종단이 힘을 합칠 수 있었던 이유가 우리나라의 문화적 배경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폭격으로 무너진 동네에 새로 들어선 교회에서는 아이들이 초콜릿과 옷을 받고 노래를 배웠고 집에서는 여전히 제사를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위해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셨고 할머니는 절에 가셨습니다. 윤석산 교수는 “갈등 없이 지내던 이러한 모습이 3·1운동 때 세 종교가 모였던 바탕이 됐던 건 아닌가 생각한다”며 “100주년 기념사업회로 종교인들이 모여서 같이 사업을 해나감으로 인해 그간 잃어버렸던 우리의 것을 다시 되찾는 기회가 됐던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광평 3·13기념사업회 회장

변방이었던 3·13운동도 전국에 알려지는 계기 됐다
이번 세미나를 위해 중국 용정에서 한국을 찾은 이광평 용정3·13기념사업회 회장(전 용정시 문화관장)은 “우리 용정에서도 3·1운동을 각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며 “3·1운동이 조선의 독립운동, 조선민족의 독립운동인 것은 부정하지 못하지만 이로 인해 중국 지방의 민족들도 각성해서 일제에 반발해 항일운동을 이끄는 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회장은 3·1운동과 연변 3·13운동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일부 중국학자들을 비판하며 “올해 길림성 당사에서도 3·13운동에 대해 충분히 긍정을 하고 정부에서 적극 밀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3·13 묘소 앞을 지나는 길이 정비되면서 3·13묘소를 재정비하고 광장도 조성하기로 했다”며 “우리 나름대로 용정에서도 애썼던 한 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 놀란 점은 탑골공원에 삼일문이 있고 삼일거리도 조성된 것이었습니다. 이걸 보면 한국의 3·1운동 (기념사업도) 어느 정도 성공한 게 아닌가 싶다”며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많은 일을 해서 탄복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유헌 민족대표33인유족회 전 회장

정부 주도로 된 것 아쉬워
정유헌 전 회장은 우선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이번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이 정부 주도로 진행된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5년 동안 큰 목소리를 내시고 한 목소리를 내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면서도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정부와 관 주도로 하면 안 되는데 그런 부분에 아쉬움이 남아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올해 불거진 한일 갈등을 언급하며 “일본은 일제치하 40~50년 동안 우리에게 식민사상을 심어놨고 ‘전쟁은 졌지만 향후에도 이간질하면서 살 것이다’라는 말을 했던 게 이번 지소미아 관계에서 드러났다”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그는 “일본이 우리에게 가장 아플 수 있는 약점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총 없는 전쟁을 한 것”이라며 “이는 우리가 자각해야 하는 문제”라고 단언했습니다.

최인경 동학혁명기념사업단 단장

독립운동가 기념물 세우는 실질적인 작업 필요해
3·1운동100주년기념 공동자료집 편찬 사업을 총괄한 최인경 단장은 공동자료집을 준비하면서 더 충분히 깊은 조사를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습니다. 최 단장은 “언론을 통해 본 3·1운동 코너에서는 해외 자료에 손을 못 댔다”며 “폭넓게 한다면 민족대표에서도 더 많은 분들을 다룰 수 있었다”고 토로했습니다. 또한 그는 독립운동가 개개인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이 부족하다는 것도 지적했습니다. 그는 “‘100년 만에 서훈이 됐다’는 분들이 너무 많았다”며 “재판기록을 갖고 있음에도 결과가 없는 분들이 많고 민족대표 50인들에 대한 현장을 가 보면 각 종단 대표자 외에는 아무런 기념물이 없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표지판을 세운 건 하나도 없었다”며 “앞으로는 현장에 표지판이라도 세우는 실질적인 작업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본다”고 제안했습니다.

 

왼쪽부터 윤석산 한양대 명예교수, 이광평 용정 3·13기념사업회 회장, 정유헌 민족대표33인유족회 전 회장, 최인경 동학혁명기념사업단 단장
법현스님

정부와 시민들이 서로 적절한 역할 하는 협치도 중요
법현스님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법현스님은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블라디보스톡의 서울2A 표지판 원본이 살아있으니 국가의 힘을 빌리거나 독립운동단체와 얘기를 해서 원본을 기증받아서 박물관으로 옮기고 싶었는데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역사상 중요 변곡점에는 임금이나 대통령보다는 민초가 큰 역할을 했었다”면서도 “다만 협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도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우리나라 모든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다고 주장하는 만큼 그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하며 민간도 실천을 담보로 국가에 지도 이념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박인주 국민대 석좌교수

민관산학연 네트워크 구축이 과제
박인주 교수는 “아쉬움 속에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추진위의 사업을 평가했습니다. 아쉬움은 민관과 산학연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못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함께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는 “민관산학연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함께 3·1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여성단체와 노동단체, 청년단체 등과 함께하자는 논의는 있었는데 구체적인 현상으로 나타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또 “3·1정신을 후세대에 체화시키고 이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현장답사나 체험을 진행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지역 교육청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교과과정을 통해서도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그는 “3·1정신을 통해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측면에서는 자료 축적과 연구를 잘했다”고 평가하며 “이를 계승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한계가 있었음에도 그는 추진위의 활동이 새로운 운동의 씨앗이 되고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습니다.

남연호 시인

기미독립선언서에 대한 연구와 교육 필요해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남연호 시인은 박인주 교수의 평에 살을 덧붙여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이끌 수 있을 방안을 제시할 수 있었을 텐데 본격적으로 하지 못한 것 같다”며 “기미선언을 기점으로 해 학교에서도 3·1운동에 많이 참여했는데 박 교수님 말씀처럼 학생들 스스로 지역과 학교별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를 하게 해서 논문을 내고, 잘된 것을 모아서 작품집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제안했습니다. 또한 남연호 시인은 “미국의 독립선언서 연구는 사례가 많았지만 기미독립선언서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었다”고 지적하며 “기미독립선언서에 대한고차원적인 연구도 좋지만 중·고등학생 수준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 선언문 대회를 열어 아이들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윤경로 한성대 전 총장

3·1운동 100주년, 계속 이어나갈 필요 있어
추진위는 김대선 교무가 준비해온 자료 ‘3·1운동 101주년 기념사업 등 향후 추진위 기획안’을 토대로 앞으로 3·1운동 기념사업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했습니다. 이에 앞서 윤경로 전 총장은 “씨앗과 디딤돌은 놨는데 이걸 성장시켜서 꽃으로, 열매로 키워야 될 시기가 눈앞에 있는 것 같다”며 “100년으로 끝나는 건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또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조직 기반을 다지고 이후에는 법인을 만들어서 5년간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디딤돌을 공고히 한다는 의미에서 기획안 제안을 해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이 조직이 젊어져야 한다”며 “우리보다 한 세대 내려갈 수 있는 젊은이들이 수혈돼서 연결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왼쪽부터 법현스님, 박인주 국민대 석좌교수, 남연호 시인, 윤경로 한성대 전 총장
태범석 한경대 전 총장

청년들이 새로운 100년 연결해줬으면 한다
태범석 한경대 전 총장은 “한발 물러서서 여태까지 추진위가 해왔던 일을 돌아보고 평가하면 최고 점수를 주고 싶다”며 “노력을 많이 했고 세세하게 준비하고 보지 못한 것들, 듣지 못한 것들, 생각지 못한 것들을 많이 가르쳐주신 것 같다”고 운을 뗐습니다. 특히 태범석 전 총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으로 군산 유적답사와 공동자료집 편찬을 꼽으며 앞으로 새로운 세대가 추진위의 사업을 이어 나가길 기원했습니다. 그는 “여기 계신 분들은 사실 문만 열어놓은 것”이라며 “청년들에게 여행을 시키는 것은 더 많은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것이고 청년들이 새로운 100년을 연결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선원 감사

이후 사업은 민족 통합의 정신으로 이어나가야
주선원 감사는 우선 추진위의 활동에 대한 보고서를 잘 작성하여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주 감사는 공동자료집과 백서,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 등을 언급하며 “그동안 추진위는 단순히 얼굴만 비추는 행사가 아닌 사진이 존재하고 언론 매체에 기사가 실리는 실제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이를 잘 정리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그는 “3·1운동은 정부의 주도가 아닌 순수하게 민 주도로 일어난 것이고 종교인들이 이끌었다”며 “민 중심의 운동이라는 3·1정신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천도교와 불교, 기독교 등 종교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던 백범 김구 선생을 언급하며 “백범 정신과 같이 민족 통합의 정신을 방향을 잡고 3·1정신을 다시 현장에서 실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100주년 이후의 사업, 과감하게 이어나가야
세미나 좌장을 맡은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도 정부에서 주도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박 목사는 “정부 주도의 100인위원회는 조직만 존재한다. ‘100주년을 계기로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본다면 사실상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꾸짖었습니다. 그는 3·1운동 기념사업이 연속성을 가지고 지속돼야 할 것도 강조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는 강한 주권을 가진 평화주체”라며 “여기서 끊어지면 안 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치문화 등의 힘을 연결해줘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에 생긴 모든 사건은 다시 새로운 100주년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며 “민간 차원에서 해온 것에 비해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100주년 이후의 사업도 과감하게 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향후 만들게 될 법인의 자금에 대해서는 정부의 보조도 필요하지만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중에서 3·1운동처럼 민족 정서에 공헌하는 활동이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제언했습니다.

 

왼쪽부터 태범석 한경대 전 총장, 주선원 감사,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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