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가 말한다| ‘기미독립선언문’을 다시 읽으며

 

양현승 국민대학교 교수

조선 중기 중종~선조 연간의 문신이자 학자 졸옹 홍성민(拙翁 洪聖民, 1536~1594)의 문집 《졸옹집(拙翁集)》에는 <촉견폐일설(蜀犬吠日說)>이라는 글이 있다. ‘촉견폐일’이란 ‘촉(蜀)나라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뜻이다. 속뜻은 ‘식견(識見)이 좁아 평범한 사물을 보고도 괴이하게 여김’을 비유한다. 홍성민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백담 구봉령(柏潭 具鳳齡, 1526~1586)도 시문집 《백담집(栢潭集)》에서 같은 제명의 글을 지어 동시대의 정치를 한탄했다. 이 글에 담긴 세태에 대한 한탄과 정치판에 대한 우려는 곧 임진왜란(1592~1599)으로 증명되는 셈이니, 당리당략의 당파 싸움의 질곡에 갇힌 정치판의 뒤틀린 현실이 쓰라린 역사로 나타난 것이다.

‘촉나라의 개들은 무리지어 짖으면서 사방에서 일어나 방자히 씹어 삼킴이 이르지 못할 바가 없으니, 촉나라에 해(日)를 없게 하는 것만이 아니고, 나라를 패망에 이르게 하지 않는 것이 드물다.’ 이 내용을 현대 상황에서 재해석하다보면 자칫 국민을 개로 비하시키는 것이라는 그릇된 해석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여기서 ‘개’는 국민이 아니라 ‘당리당략에 의해 국가의 존망은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꾼’이라는 점이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성인(聖人)의 행동을 온갖 개들이 시기와 질투로 씹어 삼키는 것은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사실이다.

어떤 나라는 지도자가 바뀌어도 정치의 큰 틀을 ‘천하통일’에 두고 있고 수십 년 간 제국주의 침략정치를 겪었던 나라에서는 ‘(민족의) 분리독립’ 쟁취가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우리도 수많은 선조들이 목숨을 초개같이 여겼기에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이는 열강들의 각축 속에 반쪽의 독립을 이룬 것이며 많은 세월이 흐르고 국운이 상승하여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나 몇몇 정치꾼들에 의해 다시 구름이 만들어졌고 비가 뿌려졌다. ‘일상의 해’는 ‘괴이한 해’가 되었고 해를 쳐다보고 짖어야 했던 아픈 세월이 계속됐다.

왜 우리에게는 ‘남북 평화와 통일’이라는 정치공약을 내건 지도자가 없었는가. 너무도 당연히 해결해야 할 민족의 과제를 왜 외면했는가. 그 동안 대립과 대결구도로 일관했기 때문에 남북 간의 접근방법에 노하우가 없었던 것일까. 접근방법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사상과 이념 문제를 앞세워 철저히 탄압해 버린 결과일 것이다. 필자는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구봉령과 홍성민의 <촉견폐일설>을 읽다보면 현실 정치에 울화가 치밀곤 한다.

다시 ‘기미독립선언문’을 읽는다. 선언문에는 우리 민족이 갈 길이 명쾌하게 제시되어 있다.

「…(전략)…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우리들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함이며 결코 오래된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질타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 낡은 세력에 의지하여 일본의 정치하는 사람들의 명예를 위하여 희생된 잘못되어진 것과, 불합리하게 착오된 것을 개선하여 바로 잡으려함이며, 순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올바른 정치로 되돌리려 함이다.…(후략)…」

기미독립선언문에는 남(일본)과의 관계 이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바로 세워야 한다는 내적 질타의 문구가 명명백백 제시되어 있다. 국가사업의 백년대계를 제시한 것이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식민지 잔재 청산이 결코 한 순간의 유행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식민지 치하에서 익힌 ‘습성’으로 국민들의 머리 위에 여전히 바람과 구름을 만들어내고 비를 뿌리는 개들이 없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일상의 해, 우리 민족이 당연히 해결해야 할 남북평화와 통일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방법과 시도가 사상과 이념의 허울을 벗어내고 허용되는 가운데 통일의 노하우를 축적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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